지난 1996년 개봉한 영화 카잠(Kazaam)은 알라딘 요술램프를 모티브로 인기 스포츠 스타인 샤킬 오닐이 현대판 지니인 카잠으로 등장한 걸 흥행요소로 삼았다. 물론 실제 흥행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그런데 영화 제목과 똑같은 카잠(http://www.kazam.mobi)이라는 신생 스마트폰 회사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재미있는 건 영화 카잠과 오늘 얘기하려는 HTC의 상황이 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카잠이 처음 등장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관심은 높지 않았다. 이미 애플과 삼성전자가 지배하는 스마트폰 시장에 신생 회사가 뛰어들어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의구심부터 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 하지만 카잠이 전직 HTC 임원이 모여 설립한 곳이라는 사실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인이다.

지난 5월 HTC 임원이 대거 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HTC를 그만둔 임원은 뭘 하고 있을까 싶은 궁금증을 해소해준 곳이 바로 카잠이다. 카잠은 HTC UK 적진 임원인 마이클 쿰베스(Michael Coombes)와 제임스 액킨스(James Atkins)가 설립한 회사다. 설립과 동시에 7개에 이르는 세분화된 스마트폰 라인업을 공개하는 등 신생답지 않은 출발을 보였다. 또 제품만으로는 대기업과 경쟁이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구입 후 1년 내 디스플레이가 파손되면 무상 디스플레이 교환” 조건을 전면에 내세워 경쟁력을 만드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유통망이나 영업전략, 스마트폰 생산 판매 관련 노하우 등은 아무래도 HTC와 연관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카잠은 전직 HTC UK 임원이 세운 회사인 만큼 아무래도 HTC 유럽 지역 거래처 중 상당수가 이들의 공략 대상이 될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영화 카잠에서 현대판 지니인 카잠은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다. 하지만 2013년 요술램프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은 회사 카잠은 HTC에게 이롭지 않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지난 5월말 임직원이 대규모로 이탈한 사건은 HTC 피터 추의 내부 관리 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9월 발생한 사건은 더 충격적이다. HTC가 내세우는 가장 차별화 경쟁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센스 UI 6.0 디자인을 훔치려다 발각된 사건이 그것이다(위 동영상). 핵심 중 핵심 격인 기밀자료를 빼돌리려고 시도한 상황인 것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고위 간부급을 포함한 5명이나 되는 인원이 조직적으로 범행을 시도하가 체포됐다.

디자인 대표 부사장과 수석 매니저, 연구 개발 이사 등 체포된 HTC 직원이 대부분 핵심 고위급 직원이다. 일반 직원을 통제해야 하는 위치가 주축이 된 것. 이런 사건은 HTC의 현 내부 인력 관리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5월부터 시작해 10월까지 이어지는 임원의 줄사퇴 행렬. 남아있는 일부 임원이 회사 기밀을 유출하려다 체포된 일, 여기에 HTC 유럽 출신이 세운 스마트폰 기업 카잠까지…. 카잠은 흔들리는 HTC를 가장 잘 보여준 증거인 셈이다.

맹성현 칼럼니스트  sh-maeng@msh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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