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모터스의 모델S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기 자동차는 마치 최근에 나온 물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제 막 시장 보급을 시작했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 양산 전기 자동차는 지금부터 17년 전인 1996년 나왔다(세계 최초 전기자동차는 더 놀랍지만). 바로 제너럴모터스(GM)의 전기자동차 EV1이 그 주인공이다.

EV1은 지난 2003년 배터리 이슈와 과도한 생산 연구 비용 문제를 들어 기존에 나온 1,100대를 모두 폐기 처분하는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높은 인기를 끌었음에도 이런 조치를 취한 탓에 당시에는 석유업계 로비 음모론이 나돌았고 다큐멘터리가 나오기도 했다.

◇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나?=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나?(Who Killed The Electric Car?)는 지난 2006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제목.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1996년 제너럴모터스가 개발해 보급했다가 양산을 하지 않은 채 폐기했던 전기자동차 EV-1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전기자동차에 대한 외면 뒤에 석유 회사의 로비와 음모가 숨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다큐멘터리에도 나오지만 자동차 보급 초기만 해도 전기자동차가 휘발유보다 훨씬 많았다. 이미 19세기에 처음으로 전기자동차가 선보였다니 전기자동차의 역사도 정말 오래된 셈이다. 1873년 영국의 알 데이비드슨(R. Davidson)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뒤 휘발유 엔진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도태됐다가 다시 관심을 끌게 된 건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1990년 무공해 자동차를 도입하는 정책을 법제화하면서부터다. 자동차 제조사에게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전체 판매량의 2% 이상, 2001년부터 2002년까지 5%, 2003년부터 10% 이상을 무공해자동차로 판매할 의무를 부과한 것.

EV-1이 등장하게 된 배경도 이런 분위기와 연결되어 있다. 다시 다큐멘터리로 돌아가서 시작은 EV-1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 퍼포먼스로 시작한다. 다큐멘터리는 배출가스도 없고 휘발유도 없이 달리는 이 전기자동차의 죽음이 이번은 처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100년 전 도로에서도 전기자동차가 훨씬 많았지만 20세기 들어 속도가 증가하고 값싼 석유, 자동 시동기, 대량 생산이라는 3가지 요소를 앞세워 휘발유 자동차가 우세를 점하게 되고 1920년대 들어 내연기관은 도로를 지배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1987년 제너럴모터스는 태양광 도전 시합인 선레이스에서 우승하면서 실용적인 전기 자동차에 도전장을 내게 되고 EV-1을 만들게 된다. EV-1은 대여 형태로 90여 대가 캘리포니아에서 운행되지만 다시 폐기된다. 다큐멘터리는 개발에 참여했던 인원과 전문가, EV-1를 탔던 톰 행크스나 멜 깁슨 같은 유명인을 비롯한 운전자 인터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들은 100조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시장을 갖고 있는 석유 회사와 이런 거대 자본으로 움직이는 자동차 산업의 어두운 이면이 전기자동차를 죽인 주범(물론 미국 정부도 포함해서)이라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너무 소비자 입장에서만 바라본 것일 수도 있다. 산업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전기자동차가 당시 엄청난 파생 효과를 창출하지 못한다거나 대체하지 못한다면 업계가 당장 받아들이지 못하는 측면은 존재할 수 있다.

또 기술적인 한계가 아예 없는 건 아닌 상태인 점을 고려한다면 무턱대고 장례식을 치를 수도 없을 수 있다. 석유 산업에서 자유로워질 시점이 되어야 이들 대체 에너지로 움직이는 자동차도 자유를 얻게 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더구나 제너럴모터스는 지난 2008 파리모터쇼에서 공개한 시보레 볼트 발표 당시 "이상적인 전기자동차 발표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오해와 억측을 풀고자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2014년 볼트 가격 인하, 상황 역전시킬까=어쨌든 17년 전 이미 뛰어난 성능을 갖춘 전기 자동차 EV1을 만들었던 제너럴모터스가 왜 지금은 이 시장에서 리더십을 갖고 있지 못한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EV1의 성능은 그만큼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던 게 사실이다.

EV1은 9초 만에 100km/h 가속, 그러니까 제로백이 9초에 불과했다. 한 번 충전하면 120km를 연속 주행할 수 있었다. 이 2도어 2인승 쿠페는 렌트 방식으로 시장에 공급됐다. 알루미늄으로 차체를 만들어 최대한 차체 무게를 줄이고 배터리팩 고밀도화를 통해 고성능을 구현해 인기를 끌고 있는 테슬라 모델S의 현재 자리는 어쩌면 제너럴모터스의 몫이 될 수도 있었다.

제너럴모터스가 내놓은 공식 입장처럼 배터리 문제와 연구 개발 비용 문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음모론의 주장처럼 석유산업업계 로비에 의한 폐기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전기자동차가 지금 차지하는 성장세나 미래가치를 고려하면 제너럴모터스 입장에선 아쉬운 상황일 것으로 보여진다.

제너럴모터스는 4만 달러에 이르던 자사의 전기 자동차인 2014년형 시보레 볼트 가격을 5,000달러 인하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소규모 자동차 회사인 테슬라 모델S의 판매량보다 못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관련글 : 세계최초의 양산 전기차 GM EV1).

이석원 기자  lswcap@techho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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