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은 구 소련이 정권 말기 미국 우주왕복선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한 부란(Буран, Buran)의 첫 발사이자 마지막 비행 25주년이다.

부란은 에네르기야-부란(Энергия-Буран)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한 것으로 러시아어로 눈보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미국과 소련은 오랫동안 우주 개발 경쟁을 해왔다. 지난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미국이 아폴로 계획 이후 우주왕복선 개발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새로운 경쟁을 예고했다.

우주왕복선은 더 많은 사람과 짐을 우주 공간으로 저렴하게 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목표로 삼았다. 소련은 미국이 왜 30톤을 운반할 수 있는 우주왕복선 시스템을 개발하려는지 의도가 궁금했다. 기계제작중앙연구소(TsNIIMash) 등에 검토를 의뢰한 결과 과학이나 상업 위성만을 위해 우주왕복선 같은 게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 결국 군사 목적이라는 결론을 내게 된다.

이런 결과를 놓고 소련도 미국 우주왕복선에 대항할 수 있는 동등한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고 결정, 1976년 2월 17일 에네르기야-부란(Энергия-Буран) 프로그램을 결정한다. 소련은 부란을 철저하게 비밀리에 개발했다. 그러던 중 1982년 6월 3일 인도양에 수수께끼의 물체가 떨어진 걸 호주 해군 초계기가 발견하면서 소련이 우주왕복선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결국 개발기간 12년을 거쳐 부란은 1988년 11월 15일 발사대를 이륙했다. 부란은 지구를 두 바퀴 돈 다음 206분 후 역분사를 실시해 대기권으로 재돌입해 안전하게 지상에 착륙하는 일정을 모두 소화해냈다.

하지만 부란은 또 다시 우주 비행에 나서지 못했다. 첫 비행이 마지막이 된 것이다. 1993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계획 중지를 결정한 것. 자금이 바닥난 상태에서 더 이상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었다. 당초 부란은 5호기까지 만들 계획을 세우는 한편 유인 비행을 위해 훈련도 실시 중이었지만 이것도 모두 중단됐다.

격납고에 방치되어 있던 부란은 지난 2002년 5월 12일 화재가 격납고에 발생하면서 화마의 피해까지 입었다. 부란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미국 우주왕복선 카피캣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소련 측은 당시 같은 성능을 추구하다 보면 공기역학적으로 비슷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형 뿐 아니라 해치 위치나 창문 모양, 내부 배치까지 똑같다는 건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부란은 미국 우주왕복선보다 장점도 있었다. 미국 우주왕복선은 우주인이 탑승한 상태에서만 운용 가능했지만 부란은 첫 비행에서 그랬듯 무인 비행이 가능했다. 궤도상 운용 시간도 더 길었다. 부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lswcap@techho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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