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티나, 화면을 구성하는 화소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선명한 디스플레이를 일는 형용사이자 인간의 눈(망막-인간의 안구 안쪽에 자리하는 빛을 신경 신호로 변화하는 막)을 의미한다. 애플이 지난 2010년 6월 발표한 아이폰4는 가로 세로 모두 기존 2배의 해상도를 지원하는 디스플레이를 탑재, "인간이 자각할 수 이상의 고해상도 레티나 다스플레이"로 소개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 인간의 눈이 구별할 수 없는 디스플레이라는 뜻의 '레티나'를 전면에 내세운 애플의 네이밍 전략은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시장 흐름을 바꿔 놓았다.

인간의 눈 분해능은 시력으로 계산할 수 있다. 보통 '시력 1.0' '시력 0.5' 등 수치로 말하는데 이 값이 높을수록 좋다. 그러나 사실 시력은 드래곤볼 '스카우터'의 전투력과는 달리 엄격하게 그 의미가 정의되어 있다. 시력은 "분 단위로 나타내는 시각의 역수"로 정의된 숫자다. 예컨대 시력 1.0은 "5m 거리에서 1.54mm 크기의 사물을 확인할 수 있음"을 뜻한다.

30cm 거리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봤을 때 식별 가능한 크기의 한계치는 1.54mm×0.3m÷5m=0.092mm다. 2.0이면 30cm에서 식별할 수 있는 한계치는 절반인 0.046mm로 확대된다. 즉,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인간이 식별할 수 있는 한계보다 화소 간격이 좁으면 곧 레티나 디스플레이인 셈이다. 시력이 좋건 나쁘건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접하는 모든 이들이 "레티나=망막"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애플의 탁월한 네이밍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디스플레이 화소는 1인치에 몇 개의 화소가 줄지어 있는지를 의미한다. 아이폰4의 3.5인치 디스플레이는 960×640, 326ppi를 지원한다. 25.4mm에 326개의 점이 줄지어 있는 셈이다. 이를 계산하면 점의 간격은 0.076mm이므로 시력 1.0이 식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 즉, 레티나 디스플레이다.

▲ 레티나와 일반 디스플레이의 비교. 위는 맥북 프로 레티나, 아래는 맥북에어에서 동일한 장면을 촬영, 비교한 것이다. 차이는 분명하다.

◇ 레티나 전략, 안드로이드와 PC에도 영향=초기 컴퓨터 모니터는 화소가 거칠고 육안으로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엉성했다. 1984년 애플이 출시한 매킨토시는 144ppi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화소 간격은 0.176mm이다. 애플은 이와 함께 144dpi로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 '이미지 라이터'를 내놓았다. 화면에 보이는 그대로를 프린트할 수 있었던 셈이다. 애플은 이를 두고 WYSIWYG(What you see is what you get)라는 카피를 내세워 제품 알리기에 힘썼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WYSIWYG는 전자 출판(DTP)이 자리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144dpi는 모니터나 인쇄물 모두 알맹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썩 훌륭한 품질이 아니었다. 역으로 알맹이를 활용한 디자인이 선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어도비가 개발한 해상도와 무관하게 부드러운 문자를 인쇄할 수 있는 포스트스크립트 언어와 고정밀 레이저 프린터 보급으로 1990년대 초반 도트 프린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 애플이 처음부터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지원한 것은 아니다. 고작 144dpi에서 시작했을 뿐이다.

모니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되레 인쇄물보다 뒤쳐졌다. 디스플레이 개발 기술은 물론 고화질 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연산 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했던 것. 최근 액정 디스플레이 기술은 물론 프로세서도 하루가 다르게 세대를 거듭하며 발전해 화소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고화질 구현이 가능해졌다.

애플은 아이폰4를 시작으로 2012년 3월 공개한 아이패드가 2048X1536(264ppi) 해상도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탑재했고 같은 해 6월 맥북 프로까지 레티나 라인업에 포함되면서 하나씩 늘려갔다. 올 11월에는 아이패드 미니까지 레티나 모델을 내놨다.

▲ 아이폰4에서 시작된 애플의 레티나 전략은 아이패드 3세대와 맥북 프로에 이어 아이패드 미니까지 레티나 라인업은 계속 늘고 있다.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빠른 시일에 대중화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보다 단일 모델로 대량 판매가 가능한 애플의 구매력이다. 애플 레티나 디스플레이에서 시작된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붐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및 태블릿PC는 물론 윈도우PC까지 영향을 끼쳤다. 레티나 디스플레이 도입을 늘리고 있다. 이름만 다를 뿐이다. 애플 레티나 디스플레이에서 시작된 망막으로 구분할 수 없는 고성능 디스플레이 영역은 점차 확대될 것이다.

이상우 기자  oowoo73@techholic.co.kr

<저작권자 © 테크홀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