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는 현재 애플의 산업 디자인 담당 수석 부사장이자 크리에이티브 부문 총책임자다. 그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있어 CEO인 팀쿡보다 더 높은 영향력을 가진 애플의 핵심 경영자이기도 하다.

스티브잡스에 대한 책은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조너선 아이브에 대한 책은 드물었다. 이 책은 <컬트오브맥닷컴>을 운영하고 있는 '리앤더 카니'가 조너선 아이브에 대해 쓴 글로 상당한 객관성과 높은 하드웨어적 지식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객관적인 묘사다. 조너선 아이브의 인터뷰나 에피소드는 많지 않으며, 애플의 수많은 히트작에서 조너선 아이브가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떻게 디자인을 풀어갔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묘사한다.

조너선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이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다양한 시도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애플을 다룬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경영적 관점이나 혁신, 스티브잡스 우상화 등은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평범한 영국소년의 일대기를 다룬 도입부는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한다.

조너선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은 명료하다. “디자인이 사라져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쉬운 듯 하지만 사실 어려운 일이다. 애플 제품이 더 얇아지고 베젤은 사라지며 스크린과 인터페이스 경계가 무너질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디자인 철학 덕분이다. 책에는 멋진 내용이 많지만 사실 애플 제품에 경도된 팬보이들 외에는 크게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다.

다만 조너선 아이브가 스티브잡스를 평가한 독설은 몇몇 눈에 띈다.

“잡스가 애플의 혁신을 주도하는 엔진이라는 인식이 오히려 회사에 해를 끼치고 있었다.”

"내 디자인이 잡스의 공훈을 돌아갔을 때 마음이 아팠다."

인간이라면 느꼈을 당연한 감정이다. 일반인의 우려 섞인 시선과는 달리 애플은 스티브잡스의 사후에 팀쿡과 조너선 아이브 체제에서 더 승승장구하고 있다.

애플 제품에서 더 이상 혁신적인 영감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그것도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사실 MP3플레이어, 스마트폰, 태블릿 등에서 애플은 항상 후발주자였다. 애플의 주특기는 혁신이 아니라 놀라운 수준의 하드웨어 디자인과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로 비로소 '완성작'을 만드는 데 있었다.

개인적으로 팀쿡과 조너선 아이브가 있다면 애플의 혁신은 계속되리라 본다. 후기 스티브잡스(1997년 이후)의 진정한 공적은 이 두 사람을 발견한 것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애플의 역사가 비로소 잘 정리됐다는 점이다. 애플 설립 당시의 신화와도 같았던 영웅기와 아이팟 이후의 놀라운 성공기에 가려진 애플의 숨겨진 역사, 즉 1985∼1995년 애플이 객관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일반인의 오해와는 달리 애플은 1996∼1997년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잘 버텼고 놀라운 혁신을 계속해왔다.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디자인을 주로 설명하는 책에 참고 자료 사진이 적다는 점이다. 중간에 몇 장 있기는 하지만 본문 중에는 사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내용을 읽고 사진으로 실제 디자인을 참고하고 싶지만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야 한다. 그 외에는 담담하면서도 시간과 기기별로 잘 배열된 구성 등은 매우 흥미롭다. 애플의 디자인을 더 찬양하고 싶다면, 그리고 디자이너를 꿈꾼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김정철 칼럼니스트  gizmo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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