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카메라가 인기가 없어진 이유는 실증주의자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파일로만 존재하는 디카를 사랑하며 형이상학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즉석카메라 팬은 남아 있다. 굳이 여러 장의 사진을 찍지 않고, 원샷원킬로 베스트 사진이 나올 수 있는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자들이 주로 그렇다.게다가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아름다운 여자들의 대부분은 실증주의자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을 믿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가방이나 구두로 증명을….

후지필름이 실증주의적인 여성들을 위해 즉석카메라의 계보를 이어 나가고 있다. 지난 23일, 후지필름은 인스탁스 미니 90이라는 새로운 즉석카메라를 발표했다. 부제는 네오 클래식(Neo Classic). 클래식함을 지키면서도 새로움을 부여하겠다는 전략이다.

그 전략은 다음과 같다. 즉석카메라는 대부분 초점이 안 맞고 색상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광량이 부족하고, 오토포커스를 지원하지 않으며 셔터스피드 조절 기능이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인스탁스 미니 90은 고성능 플래시를 탑재하고 간단한 셔터스피드 조절기능, 벌브모드까지 지원한다. 지난 시대의 즉석카메라보다는 훨씬 깔끔한 사진을 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클래식해진 것은 디자인이다. 후지필름은 최근 레트로한 디자인의 카메라를 많이 내놓고 있는데, 이 전략은 무척 성공적이다. 인스탁스 미니 90은 복고풍의 깔끔한 디자인으로 지난 시절 미키마우스를 닮은 끔찍했던 인스탁스 시리즈의 디자인과 작별을 고하고 있다.

최근 캐논과 니콘이라는 양강 구도 하에 삼성과 소니가 콤팩트 카메라로, 후지필름은 복고풍 카메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올림푸스는…흠. 올림푸스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인스탁스 미니 90의 간단한 스펙은 1/400 의 셔터스피트, 렌즈는 60mm F12를 지원하고, 최대 10초의 벌브모드 촬영도 가능하다. 그 밖에 충전지를 채택하고 있고, 삼각대 소켓도 제공한다. 가격은 2만엔으로 약 20만 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렴하다고? 말하자면 즉석카메라는 프린터와 같다. 프린터는 싸지만 토너는 비싼. 필름은 10장 기준으로 700엔으로 한 장당 1,000원 꼴이다. 100장에 한 장꼴로(빛과 렌즈광학이 빚어낸 실수로) 봐줄만한 사진이 나오는 우리들에게는 가히 좋은 제안은 아니다.

김정철 칼럼니스트  gizmoblog@naver.com

<저작권자 © 테크홀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