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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대한 코스프레를 향한 환호"
  • 김정철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9.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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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고, 일거수 일투족이 항상 언론에 회자된 스티브 잡스 은 사람은 더욱 어렵다. 감독은 선택을 해야 한다. 아이언맨을 만들까? 아니면 배트맨을 만들까? 영화 <잡스>는 전자를 택했다. 어둠보다는 밝고 화려함을 주로 다뤘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나 스티브 잡스 지인들이 말하던 기행은 극히 일부만 다뤘다(※ 스포일러가 엄청나게 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인생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1.

영화의 관점을 이렇게 정하니, 스티브 잡스를 옹호하는 연출이 많을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가 친구를 속이거나 돈에 인색한 부분은 아주 귀엽고 유머러스하게 연출한다. 리사의 생모를 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리사의 생모가 난잡한 파티를 하던 모습을 스티브 잡스가 목격하는 장면으로 면죄부를 부여한다.

직원에 대한 폭언과 해고 역시 스티브 잡스의 열정을 보여주는 우호적인 에피소드로 대신한다. 그와 처음을 같이 했던 친구들에게 주식을 주지 않는 이유도 공과 사를 구분하는 쿨한 성격으로 설득력 있게 그렸다. 잡스가 처음부터 PC와 기술에 대한 이해와 비전이 확실했던 사람으로 그려진다(이 부분은 이견이 많기는 하다).

<잡스>. 스티브 잡스 우상화 영화가 맞다.



2.

영화 초반부는 스피디하고 경쾌하게 진행된다. 하나둘씩 조력자가 모이고, 불가능한 일을 이뤄내고, 애플은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기업이 된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그가 리드대학을 다니던 1972년부터 시작해서 아타리 입사(1974년), 창고에서 애플을 창립(1976년)한 후, 애플에서 쫓겨나는 1985년까지가 주로 그려진다. 그리고 영화는 1996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하는 순간 끝이 난다.

그가 아이맥으로 성공을 거두고, 아이팟을 내놓는 과정(영화 도입부)은 아주 짧게 처리된다. 특히 아이폰, 아이패드 그리고 애플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기(2010년 전후)는 영화 속에서 그려지지 않는다. 이유는 그의 인생 후반부의 놀라운 성공을 이 영화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라이브로 지켜봤기 때문일 것이다.



3.

영화에 대해서 불만을 갖는 이가 있다면 더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그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영웅 스토리에서 끝없는 승리만큼 뻔한 즐거움이 또 있겠는가?

하지만 <잡스>는 뻔한 승리 직전에 영화가 끝이 난다. 마치 예수 영화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다시 부활하려는 순간 영화가 끝나는 셈이다. 대신 이야기는 난데없이 스티브 잡스의 복수극에 클라이막스를 맞춰 놓았다.

그를 내쫓는데 표를 던졌던 마이크 마쿨라를 복귀해서 내쫓는 모습과 이사회를 굴복시키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길 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뿔사. 관객들은 마이크 마쿨라를 연기했던 '더모트 멀로니'의 너그러운 미소에 너무 감정이입이 되어 있었다. 별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4.

영화 <잡스>는 IBM과의 경쟁, 마이크로 소프트와의 경쟁 등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애플 내부의 적들과 싸우는 모습을 밀도 있게 다뤘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내면과 싸우는 모습이나 광기에 가까운 성공에 대한 집착을 더 다뤘다면 영화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업계의 복잡한 비즈니스 관계와 스티브 잡스의 놀라운 대처 능력을 보여줬다면 IT 업계에게 호평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애플 내부의 적(직원, 이사회, 친구들 등등)들이 주요 적으로 묘사됐으니 칭찬할 집단이 없다. 게다가 스티브 워즈니악을 비롯해서 아직 살아있는 많은 동료들이 이 영화를 좋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많은 스티브 잡스 팬보이에게 다시한번 스티브 잡스를 그리워 할 수 있는 영화다. 종교 영화를 보며 비판할 수 있는 신도가 얼마나 되겠는가!

또한 애쉬튼 커처는 연기보다는 모방에 힘을 쏟았고, 그의 전략은 옳았다. 어느 순간 내 눈에는 스티브 잡스가 보이기 시작했고 심지어 워즈니악도 비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또 가끔 스티브 잡스의 명언들이 등장해서 그의 복음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오르가슴을 주기에도 충분했다.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은 스티브 잡스의 숨겨진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잘 알려진 성공스토리를 다시한번 확인하기를 원한다. 아무리 들어도 아무리 말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뿌듯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 <잡스>는 멋진 배우가 만들어 낸 거대한 코스프레 수준이지만 스티브 잡스의 그림자에도 환호를 하던 그들의 팬보이들에게는 옳은 전략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몇 가지 상식

- 흔히 애플은 차고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영화에서 보듯이 차고가 아니라 창고에서 시작한 기업이다. 차고에서 시작한 기업은 HP와 구글이다.

- 존 스컬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스티브 잡스를 해고하지 않았고, 그 당시 애플은 흑자를 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인터뷰는 이사회를 마음대로 할 수 없던 스티브 잡스가 '어느 정도' 자발적으로 나갔음을 암시했다.

- 애플2를 개발할 때까지 스티브 잡스는 PC에 대한 철학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PC를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스티브 워즈니악은 증언했다. 스티브 잡스가 겨우 인간답게 변한 것은 1996년 애플 복귀 이후였다고 한다.

- 사실 매킨토시의 개발은 "제프 레스킨"이, 디자인은 "하르트무트 에슬링거"가 주도했다는게 정설이다.

- 영화상에서 스티브 잡스는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는데 실제로 그랬다고 한다. 라면상무의 나라 한국이었다면 스티브 잡스는 꽤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여기 미친 사람들이 있습니다…."는 IBM의 "Think Big" 캠페인에 맞서 TBWA에서 만든 "Think different" 캠페인에 쓰였던 카피다. 실제 스티브 잡스가 녹음했지만 방영되지 않았고, 광고에서는 다른 이의 목소리로 나갔다고 한다.

- 후반부에 스티브 잡스가 소니 CDP를 짜증내며 버리는 모습이 나오며, 아이팟을 개발하게 된 모티브를 슬며시 보여준다. 디테일한 우상화 작업이다. 사실 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우리나라가 만들었다.

김정철 칼럼니스트  gizmo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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