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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없던 중세…과일벽 있었다

추운 시기나 아예 추운 지방에선 작물을 재배할 때 요즘에는 비닐하우스나 온실을 이용한다. 하지만 비닐하우스가 발명되기 이전인 중세 시대에는 거리에 벽을 만들고 벽이 흡수한 태양열로 작물을 키우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이런 벽이 너무 많아 미로처럼 보여 침략해온 적군이 당황할 정도였다고 한다.

일명 과일벽(Fruit Walls)이 만들어진 계기는 1561년 스위스의 식물학자인 콘라트 게스너(Conrad Gessner)가 건포도 등을 익히려면 태양에 의한 따뜻해진 벽을 이용하면 효과적이라는 내용을 책에 묘사하면서다. 그의 견해는 과일벽으로 알려지며 프랑스 북부와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등 북유럽에 퍼진다.

과일벽의 구조는 낮에 햇빛을 받고 따뜻해진 벽이 식물 성장 환경을 촉진시키는 동시에 밤에는 천천히 열을 방출, 오한으로 인한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 또 비와 우박, 조류 배설물 등에서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과일벽에 지붕 같은 걸 설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14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중반까지는 소빙기(little ice age)라고 불리는 추운 한경이 지속됐다. 과일벽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 시기다. 한기를 견디기 위해 프랑스에선 과일벽을 도입했다. 지금도 유럽 건축에선 벽 한 면을 덩굴과 과일로 덮는 가지시렁(espalier)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과일벽은 이런 가지시렁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과수 성장을 돕는 일석이조의 방법이었던 셈이다.

이후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공기 순환을 좋게 하기 위해 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심는 등 기술도 점점 향상되어 갔다. 과일벽은 베르사유 등 부유층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처음에는 볼 수 있었지만 지방으로 점차 퍼지면서 파리 교외에서도 과일벽을 이용한 대규모 복숭아 생산이 이뤄지기도 했다. 1870년경 프랑스 북부 몽트레유(Montreuil)에는 600km에 달하는 과일벽이 형성됐다. 거리는 마치 미로처럼 보일 정도. 침공하려던 프로이센군이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이 때 과일벽의 높이는 2.5∼3m 사이이며 두께는 50cm 가량이었다고 한다. 표면은 석회석으로 석고로 발라 굳혔다. 과일벽 중심은 온도가 낮은 편이어서 사과나 딸기, 채소, 꽃 같은 걸 길렀다. 몽트레유는 원래 복숭아 산지였지만 전성기에는 다양한 과일을 연간 1,700만 개가 생산했다고 한다.

1730년대 몽트레유 외에 과일 생산에 성공한 곳은 파리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인 토메리(Thomery)다. 이곳은 포도 생산으로 유명해 전성기에는 300km에 달하는 과일벽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포도 생육에는 온난하고 건조한 환경이 필요하지만 파리 남부는 비가 와서 습도가 있고 바람에 노출된다. 토메리는 과일벽 외에 과일 보관 기술도 크게 높아져 물과 포도 줄기를 넣은 병을 선반에 설치하는 방법도 나왔다. 이를 통해 포도 신선도를 유지한 것.

그 밖에 네덜란드와 벨기에처럼 저지대에서도 과일벽을 이용한 포도 재배가 이뤄졌다고 한다. 1850년대부터 네덜란드 웨스트우드(Westland)와 벨기에 호에일라르트(Hoeilaart)는 포도 산지로 178km에 걸친 과일벽을 쌓아올렸다. 네덜란드에 있는 과일벽은 구불구불하거나 울퉁불퉁한 형태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강도를 높이기 위한 것. 또 다른 이유는 네덜란드는 파리보다 400km 가량 북쪽에 위치해 직선 벽보다 높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또 스위스 수학자인 니콜라스 파티오(Nicolas Fatio)는 햇빛을 더 오래 받을 수 있도록 45도 경사가 있는 벽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영국에선 과일벽을 이용한 대규모 농업은 없었지만 1600년대 이후 시골집 정원에선 과일벽을 만들었다. 영국에선 벽 안쪽에서 불을 지펴서 벽을 따뜻하게 해서 벽 위쪽 굴똑으로 연기를 내뿜는 구조를 개발하기도 했다. 또 온수관으로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과일벽도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철도가 발달하면서 남쪽 지방에서 과일을 수입하는 게 용이해지자 인건비가 들어가는 과일벽은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직접 어렵게 키우는 것보다는 철도로 가져오는 비용이 더 저렴했기 때문.

한편 중세 시대에 요즘 볼 수 있는 온실 건설이 어려웠던 이유는 거대한 유리판 제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종 모양을 한 유리를 식물 위에 올려서 유리 내부 온도를 높게 유지하는 방식을 취한 온실 만들기는 1600년대 무렵부터 시작됐다. 1800년대 들어서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에서 과일벽에 놓이는 형태로 유리를 설치, 식물 발육이 좋아진다는 건 발견다. 점차 기술이 개선되면서 1850년 경에는 네덜란드 웨스트랜드에서 처음으로 과일벽을 이용한 형태로 온실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결국 1881년 경에는 178km짜리 과일벽 중 22km가 유리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이후 온실은 발전을 계속 해갔지만 정작 따뜻함을 주는 장치는 여전히 과일벽 구조, 그러니까 낮에 받은 햇볕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벽에서 온기가 서서히 방출되는 구조에만 의존했다. 이어 산업이 발전하면서 거대한 유리판을 만들 수 있게 됐고 화석 연료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온기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1890년대 벨기에선 처음으로 대형 유리를 이용한 온실이 나타났고 네덜란드에도 생겼다. 과일벽은 온실과 대체되면서 점점 사라지게 됐다.

현재 중국은 태양광을 이용하는데 동력을 이용하지 않는 패시브 솔라 시스템형 온실이 80만 헥타르가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발달한 과일벽을 바탕으로 네덜란드에서 확대된 온실 기술은 이젠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네덜란드 온실보다 80배에 달하는 온실이 중국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lswcap@techho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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