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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탄생으로 이어진 전화해킹장치

스티브 잡스는 1977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을 공동 창업한다. 하지만 이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71년이다. 아직 고교생이던 잡스와 워즈니악은 전화 회선을 해킹해 무료로 전 세계 어디서나 전화를 걸 수 있는 블루박스라는 장비로 대박을 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루박스는 물론 불법이었다. 워즈니악은 한 남성 잡지에 게재된 작은 블루박스의 비밀(Secrets of the Little Blue Box)이라는 14페이지 기사에서 영향을 받았고 이 장치가 전화 회사에 대한 일종의 반란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반란의 일부로 자신도 참여했다는 것. 잡스 역시 10대 2명이 조립한 100달러짜리 장비가 전화 회사의 인프라를 제어할 수 있는 건 마법과 같은 일이라면서 열중했다고 한다.

초기 전화를 상당히 간단한 구조였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면 전화선 2개를 직접 연결해 전화선을 이어주는 구조였던 것. 이런 두 회선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 게 전화 교환원이다. 하지만 1970년대 전화가 보급되면서 이를 모두 인력만으로 모든 전화 회선을 연결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도입된 게 바로 컴퓨터를 이용한 전화 교환기다.

전화를 걸 때 소리가 들리는데 이 소리를 듣고 컴퓨터는 전화번호를 인식, 상대방 전화 회선에 연결을 했다. 1960년대 초반에는 당시 전화 회사인 AT&T는 높낮이가 다른 두 음색 조합을 번호로 인식하는 DTMF(Dual-Tone Multi-Frequency) 구조를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전화를 걸 때 신호음을 통해 전화 교환기를 조작하는 시스템이 실용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를 해킹해 전화 요금을 공짜로 만들어버리는 게 바로 블루박스다. 당시 워즈니악은 이 방식을 이용해 전 세계 어디에나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자유롭게 전화를 걸 수 있다고 강연하는 모습도 아직 남아 있다. 사실 미국에서 어느 국가에도 무료 통화를 할 수 있고 어떤 전화기로도 해외 전화선을 통해 지구를 일주해 바로 옆에 있는 전화와 통화하는 곡예 같은 일도 가능했다고 한다.

이 해킹 방법을 발견한 건 1960년대 초반 하버드대학에 다니던 학생 몇 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이들은 이를 괴물이라고 불렀다. 이들 중 한 명인 토니 록(Tony Lauck)은 자신이 전화 해킹에 열중했을 무렵만 해도 아직까지 전화 시스템의 수준이 낮았다고 말한다.

이렇게 공짜로 전화를 쓰기 위해 해킹을 하는 행위를 프리킹(Phreaking)이라고 한다. 이들은 실제로 톤 신호를 만들고 테이프에 녹음해 전화기에 대고 입으로 재생해 전화를 거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블루박스가 실제로 사용 가능한 장치라는 걸 입증한 것이다.

물론 단순하게 흥미로 시작된 프리킹이지만 문제가 있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냉전을 벌이던 시대다. 무료로 아무런 규제 없이 해외로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건 간첩 행위와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프리킹은 당국의 규제를 받게 된다.

하지만 프리킹 자체는 악용 여부와는 별개로 어디까지나 호기심에서 태어난 것이다. 워즈니악 역시 프리킹은 당시 최신 기술을 이용한 것으로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걸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휘파람으로 전화를 거는 기술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맹인이 휘파람으로 삐삐와 같은 전화음 소리를 일정하게 울려 전화를 거는 데 성공한 것. 또 특별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작은 피리를 수화기에 대고 누르면 어디든 전화를 걸 수 있는 방식도 있었다.

전화를 해킹해 공짜로 장거리 전화를 할 수 있는 프리킹은 처음에는 단순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점점 다른 의도를 지닌 사람에 의해 악용된다. 범죄자나 도박판, 마약 밀매 조직 등이다. 이유는 통화료를 줄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통화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점이 범죄에 좋은 장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xCNvNwl60s

워즈니악이 앞서 언급한 남성 잡지를 보게 된 건 1971년이다. 이 잡지에는 이런 프리킹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 적혀 있었고 그는 믿을 수 없는 내용에 마음을 빼앗긴다. 워즈니악은 바로 잡스에게 전화를 해서 기사를 읽으라고 설득했다. 두 사람은 스탠포드 대학 도서관에서 연구를 시작했고 당시로는 세계 첫 디지털 블루박스를 개발하게 된다. 완성된 장치는 기능 뿐 아니라 제대로 설치할 수 있는 외장, 버튼 디자인 등을 갖추고 있었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블루박스를 이용해 바티칸에 전화를 걸어 미 국무장관이라면서 교황과 통화하고 싶다고 전화를 걸 수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워즈니악이 “내가 헨리 키신저”라고 밝혔지만 상대방이 “조금 전에 키신저와 만났는데…”라고 말해 당황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잡스는 블루박스의 의미로 아이디어가 가진 힘을 알게 됐다는 것으로 꼽는다. 블루박스가 없었다면 다음에 등장할 애플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 단순히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뿐 아니라 이런 제품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후 잡스와 워즈니악은 애플을 설립했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들에게 영향을 줬던 존 드레이퍼(John Draper) 같은 프리킹을 개발한 사람은 공짜로 해외에 전화를 걸다가 전화 요금 사기 혐의로 실형 판결을 받고 징역 생활 3년을 보냈다고 한다. 존 드레이퍼는 1978년 출소 이후 워즈니악, 잡스와 재회한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존 드레이퍼를 애플에 고용했다. 존 드레이퍼에게 워드프로세서인 이지라이터(EasyWriter) 개발을 의뢰한 것. 이 소프트웨어는 애플Ⅱ가 대히트를 치는 계기를 만들었다. 소프트웨어가 애플을 성장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한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lswcap@techho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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