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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햄버거 체인 ‘신화의 시작은…’

이젠 전 세계에 걸쳐 매장을 운영하면서 햄버거와 튀긴 감자, 현지화 메뉴까지 제공 중인 맥도날드도 갓 설립한 초기 시절이 있었다. 맥도날드 형제 2명이 만든 작은 레스토랑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맥도날드의 창조자인 맥도날드 형제는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아버지가 42년 동안 일하던 회사에서 한 번에 해고되어 버린 걸 목격한 형제는 운명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먼저 모리스 맥도날드가 캘리포니아로 갔고 동생인 리처드가 형을 따라 1926년 이주한다.

신천지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형제가 처음 구상했던 건 당시 인기를 모았던 영화 사업에 종사하는 것. 성공을 거둬 50세가 되기 전 부를 축적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들은 영화 제작에 종사하지만 일자리는 모두 작은 일들이었다. 수익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형제는 영화 사업 중에서도 영화를 만드는 쪽에서 극장을 운영하는 외부에서 보이는 쪽으로 노선을 바꾼다. 이들은 로스엔젤리스에서 30km 떨어진 글렌도라라는 지역에 있는 영화관을 인수해 영화 상영을 시작했다. 이 때 관객의 음식물 반입을 막기 위해 극장 로비에 스낵바를 마련하게 된다.

이렇게 영화관 사업에 진출했지만 순조롭게 보였던 영화관 사업도 실제로는 자금 조달에 분주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결국 영화관 인수 7년 뒤인 1937년 형제는 영화관을 팔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식품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이들은 한때 미국을 동서로 횡단했던 루트66, 국도 66호선 길가에 노천 식당을 만든다. 근처에는 미국에서 가장 친절한 공항으로 불리는 풋힐 플라잉 필드(Foothill Flying Field)가 있었고 영화 촬영에 적합해 영화배우가 촬영을 위해 방문을 많이 했다. 형제가 낸 가게는 스타나 여행자의 갈증을 풀어준다는 요구에 맞았고 대성공을 거둔다. 이들은 뉴햄프셔에 살던 부모를 캘리포니아에 초청할 수 있게 될 만큼 성공한다.

당초 맥도날드 형제가 생각했던 건 모든 메뉴를 10센트에 제공하는 다이머(Dimer) 유형 레스토랑이었다. 하지만 불경기 영향으로 포기하게 된다. 당시 사람들은 불경기 영향으로 일이 줄면서 일주일 중 일을 하러 나오는 날이 4일 이하로 줄었다. 짬을 주체하지 못한 사람들은 타를 타고 나가게 됐고 외식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 형제는 더 서쪽에 있는 샌버너디노로 이주, 맥도날드 바비큐(McDonald's Barbeque)를 개점한다. 당시 레스토랑을 모방해 이곳도 큰 주차장에 카홉(Carhops)으로 불리는 웨이트리스 여성이 운전자에게 주문을 받으러 가서 상품을 직접 전달해주는 스타일로 운영했다.

이후 1930년대부터 1940년대 전쟁으로 인한 혼란기를 겪으면서 형제는 그때까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들어 있던 재미에 대한 욕망이 단번에 해방될 시대를 맞게 된다. 헨리 포드에 의한 자동차 제조 기술 실용화로 1950년대 말까지 미국 내에는 4,000만 대에 달하는 자동차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상당수 차량이 소비하는 휘발유로 얻은 세수 덕에 국가는 도로망을 정비, 물건이나 사람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 필수적인 게 주유소와 여행자를 위한 숙박 시설인 모텔, 식사를 위한 레스토랑이다. 미국 내에는 이런 시설이 길가를 중심으로 곳곳에 건설됐고 한때 오렌지밭이 펼쳐져 있던 캘리포니아 일대에도 도로와 모텔, 레스토랑이 생겨난다.

레스토랑에는 수많은 이용객이 방문하면서 대량 주문을 효율적으로 처리,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맥도날드 형제는 미국 동해안 부동산 개발에서 탄생한 교외라는 개념을 만든 윌리엄 J. 레빗(William Jaird Levitt)의 생각을 햄버거 생산 방식에 도입하기로 한다. 레빗은 포드가 개발한 대규모 생산 방식을 주택 건축에 도입한 인물로 1만 달러라는 저렴한 주택을 제공해 도시 주변부에 거주지가 늘어선 교외에 산다는 라이프스타일을 주창했다.

이를 위해 먼저 맥도날드 형제가 손잡은 매장 매출 상황을 분석해 제공 메뉴를 25종에서 9종으로 줄여 비용과 노력을 줄였다. 또 요리에 사용하는 케첩과 겨자를 필요한 양만큼 자동 토출하는 기계, 음료를 한 번에 5잔씩 만들 수 있는 기계 등을 투입해 효율성을 높였다.

또 맥도날드 형제는 업무 효율화 방안도 고민한다. 당시 살던 집 뒤뜰에 있던 테니스 코트를 캔버스 삼아 매장에서의 작업 흐름에 대한 개선책을 고민한 것. 110초 가량이면 비프 패티 40장을 그릴에서 굽고 시간당 900인분 감자를 만들고 주문하면 20초 안에 상품을 완성시킨다는 맥도날드 특유의 빠른 상품 제공 흐름을 이곳에서 고안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iiHDHPmQ_t0

이런 개선책에는 상품을 제공하는 여성 웨이트리스인 카홉 절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매장 이용객이 이전처럼 카홉에 주문을 하는 게 아니라 매장 카운터 너머에 있는 점원에게 직접 주문을 하도록 한 것. 상품이 만들어지는 동안 이용객은 카운터 너머로 생산 방식까지 보게 된다. 지금은 당연한 이것도 맥도날드 형제의 전략 중 하나다. 당시 매장 내 주방에는 모두 남성 직원이었다고 한다. 이는 맥도날드 형제가 여성 직원은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햄버거 생산 시스템화에 성공한 맥도날드 형제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면서 미국 내에선 비밀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이란 가운데 맥도날드 형제가 만난 인물은 후세에 이름을 남길 맥도날드 성공의 주역인 레이 클럭(Ray Kroc)이다. 맥도날드 형제의 시스템에 푹 빠진 그는 협상 끝에 1954년 프랜차이즈를 획득했고 이듬해인 1955년 첫 프랜차이즈 매장을 열었다. 맥도날드 성공의 첫 걸음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lswcap@techho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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