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하이저(Sennheiser)가 ‘드디어’ 헤드폰 앰프 HDVD 800을 내놓았다. 젠하이저는 1991년 오르페우스 헤드폰과 진공관 헤드폰 앰프(HEV90)을 내놨지만 패키지 형태의 한정판이었다. 정식 헤드폰 앰프 출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여느 회사의 첫 제품에는 어설픔과 의심의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젠하이저라는 브랜드가 갖는 신뢰성과 음질 노하우를 볼 때면 이런 시선은 기우에 가깝다.

상업적 성공의 결과나 사용자들의 만족도를 볼 때 자타가 공인하듯 젠하이저는 최근 헤드폰 시장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기대처럼 젠하이저는 그들의 첫 번째 헤드폰 앰프를 어설프게 시작하지 않았다. 당당한 그리고 프로페셔널한 그들의 첫 번째 헤드폰 앰프를 만나본다.

제품을 살펴보기 전에 스펙부터 먼저 살펴보자. 이름에서 느껴지듯 기본적으로 동사의 최고급 헤드폰인 HD800용으로 제작된 제품이다. 그러나 헤드폰 임피던스는 16∼600Ω까지 고려했기 때문에 기종에 크게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주파수 응답은 10Hz∼100KHz,. 24bit/192kHz 대응의 버-브라운(Burr-Brown) PCM1792A DAC가 내장되어 있고 동기식 비동기식 입력 지원, XLR입력 및 옵티컬, S/PDIF 디지털 입력 및 USB 입력을 지원한다.

주목할 것은 XLR-4출력(밸런스 출력)이다. 아마도 헤드폰 회사에서 내놓은 것 중에는 최초인 듯싶다. 최고급 헤드폰 앰프 자리를 노리는 젠하이저의 야심이 엿보인다. 밸런스 출력으로 인한 신호 왜곡, 에러 보정 효과는 많은 하이엔드 유저 사이에서 이미 증명된 바가 있다.

패키지는 언뜻 단출하다. 고급스러움보다는 실용적이며 제품을 보호하는 형태로 단순하다. 구성품은 인스톨 CD와 퀵가이드, 설명서 뿐. 연결 케이블이나 전원 케이블조차도 없다. 사실 전원선을 더 굵고 비싼 놈으로 교체하는 것은 하이엔드 오디오 유저들에게는 흔한 경험이다. 좀 더 하이퀄리티 음악에 도전하라는 젠하이저의 압력(?)처럼 느껴진다.

디자인 컨셉트는 하이엔드 오디오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최소한의 장식과 알루미늄 하우징, 아날로그 볼륨, 셀렉터. 하이엔드 오디오와 함께 오디오랙에 들어가 있는 게 어울리는 디자인이다.

단단한 만듦새와 빈틈없는 하우징이 신호 간섭을 최소화 한다. 가로 길이는 22cm, 세로 길이는 30cm 정도로 하프랙(일반 오디오의 절반 정도 크기) 사이즈로 책상 위에 둬도 큰 불편이 없다. 높이는 4.4cm. 중량은 살짝 무게감이 느껴지는 2.25kg.

언뜻 심심해 보이는 디자인이 윗면 패널에 적용한 글라스 덕분에 생기로워 진다. 윗면 패널에는 내부의 아날로그 회로가 보이도록 블랙 글라스가 적용된 창을 적용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볼륨부이다. 기분 좋은 촉감의 알루미늄 절삭 노브를 사용했는데, 그 손맛이 훌륭하다. 볼륨 컨트롤 부품은 하이엔드 볼륨으로 유명한 일본의 알프스(Alps)제를 사용하여 신뢰감을 높이고 있다. 출력부는 발란스 출력 두개와 6.3mm의 표준 스테레오 출력부가 2개 마련되어 있어 두 명이 동시에 음악을 즐길 수 있다.

후면부는 복잡하다. 다양한 형태의 입력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우선 PC연결을 위한 USB를 지원한다. 디지털 오디오 입력을 위해서는 AES/EBU, 동축식(COAX)와 광입력(OPT)을 지원한다. 다만 광입력은 24비트 88.2KHz까지만 대응된다. 청음시 192Khz 음원이 재생되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아날로그 입력단도 빼곡하다. 밸런스 입력과 언밸런스 입력, 그리고 DAC 이용을 위한 발란스 출력단자까지 후면부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거기에 입력부 게인 스위치도 제공해 신호레벨 조정도 가능하다(6∼+16 dB 사이에서 32dB의 게인 조절).

◇ 음질 특성은=HDVD 800은 기본적으로 DAC를 내장한 헤드폰 앰프다. 따라서 PC-FI에 가장 적합하다. 다만 USB 연결 시 맥과는 달리 윈도 OS에서는 동봉된 설치 CD에서 인스톨을 해야만 HDVD 800이 인식된다.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PC에도 광출력(OPT)이 있는 경우가 있지만 HDVD 800의 광입력은 24비트 88.2Khz까지만 제공하므로 24비트 192Khz 재생을 위해서는 USB연결을 해야만 한다.

청음을 위해서는 컴퓨터와 아스텔앤컨 AK100과 번갈아 청음했다(소프트웨어는 foobar 2000을 사용했다). 청취 헤드폰은 젠하이저의 최상급기 HD800과 가격대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HD600을 이용했다. 일반적으로 PC와 HD800 헤드폰을 이용해서 청취했으며, HD600에 비해서는 음장감이 늘어나는 차이가 느껴졌다.

음질 특성을 간단히 정의하자면 착색이 없이 솔직한 헤드폰 앰프다. 소스에서 나오는 음악을 정확하게 증폭시켜 재생하는데 헤드폰 앰프에서 흔히 보이는 과장된 증폭이나 소리의 왜곡이 거의 없다.

특히 아스텔앤컨 등 플레이어에서 임피던스 매칭이 이뤄지지 않았던 HD800 헤드폰을 완벽하게 구동시키고 숨겨져 있던 장점을 끌어내는 점은 압권이다. HD800이 가진 뛰어난 해상력에 더해서 중저역의 밀도감과 고음 역시 좀 더 뻗는 느낌이다. 특히 보컬음악은 기존 HD800에서 느끼지 못한 감칠맛과 현장감이 더해진다. 새로운 음악보다는 평소에 많이 듣던 음악과 샘플러 등을 이용해 청음했다.

최근 밖은 물론이고 집에서도 아스텔앤컨과 블루투스 헤드폰으로 간단하게 음악을 들어 왔다. 그런데 며칠 동안 HDVD 800과 함께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귀 수준이 다시 높아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PC, 헤드폰앰프, 헤드폰 정도면 하이파이를 위한 최소한의 타협으로 괜찮지 않느냐는 자기 합리화가 시작됐다. 고민이다. 물론 290만원에 이르는 가격도 고민을 더 하게 만든다.

HDVD 800은 낮은 디스토션과 낮은 노이즈 레벨을 추구하는 헤드폰 앰프다. 특히 밸런스 입출력을 지원하는 등 최대한 깨끗하고 정확한 소리와 숨어 있던 사운드를 재생해 내는데 노력을 기울인 앰프로 정리할 수 있다.

젠하이저의 첫 번째 헤드폰 앰프지만 충분히 레퍼런스 역할이 가능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헤드폰 앰프다. 착색이 없고 본래 소리를 그대로 옮겨주기 때문에 어떤 헤드폰을 쓰더라도 헤드폰 고유의 장점을 극대화시킨다. 몇 달 후 PC-FI나 헤드파이를 추구하고 있는 사용자 사이에서 “끝판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김정철 칼럼니스트  gizmo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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