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국정농단 세력 뇌물공여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여파가 만만치 않다. 롯데그룹은 그룹대로 예상치 못한 위기에 당황하고 있고 재계도 충격에 휩싸여 있다.

법적인 것은 법적인 대로 푸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신동빈 회장 구속에 대한 여론은 생각보다 동정적이다. 정부의 강요로 사드 부지를 어쩔 수 없이 제공해 중국에서 사드 보복을 받은 기업에게 좀 심하다는 시각이 제법 많다.

사실 롯데그룹은 박근혜 정권과 만나면서 악연이 시작됐다. 그 이전 정권에선 없던 일이었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의 여파로 불거진 비자금 의혹 등으로 지난 2016년 검찰 수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은 검찰 소환 등으로 데미지를 입었다. 그룹 맏딸인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게다가 경영권 분쟁으로 TV 생중계가 진행되는 상태에서 ‘형제간 골육상쟁’ ‘신격호 회장 치매설’ ‘일본 기업 간섭설’ ‘밀실 경영’ 등으로 심각한 이미지 추락을 겪어야 했다. 여기에다 사드 부지 선정은 최악의 악재로 다가 왔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청와대에서 K스포츠재단 지원 요청을 받았고 대통령과의 독대가 있었으니 답답한 롯데로서는 최고 권력자가 돈을 요구하는데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업은 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더 민감한 것은 과거 정부가 어떤 식으로 일을 해왔는가에 따른 학습효과일지 모른다. 촛불혁명을 통해 국민의 정부로 출범한 현 정부와 달리 지난 1980년대 국제그룹은 신군부에 밉보여 그룹을 강제로 해체당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지금도 그 시절 기획실 등의 간부들이 해마다 모여 그때의 일을 토로하며 격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표면적으로는 기업부실이 원인이었지만 알 만한 사람은 정부가 물밑에서 개입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롯데가 과연 최고 권력자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 롯데는 정권 차원에서 벌인 국책사업을 돕는다는 정도의 시각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뇌물이 아닌 후원이나 지원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당시 K스포츠재단을 지원하며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받았다는 롯데측 항변이 이 같은 판단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실례라 할 수 있다.

‘묵시적 청탁?’ 말은 좋지만 과연 권력자 앞에서 약자가 되는 정부의 정경유착 고질병을 고치지 않고 기업만 처벌한다면 누가 기업을 하고 싶어 할까.

지금 정부는 사드 부지를 제공해 중국 사업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롯데에 무슨 협조나 도움을 주었는가?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도 타격이 컸는데 정부는 손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제 총수 구속이다. 이건 뭔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 하지 않은가?

문제는 롯데의 다음 행보다. 신동주 씨측에서 경영권 재도전에 나서고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롯데가 약속한 그룹 개혁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호텔롯데 상장, 지주회사 완성, 대규모 투자, 고용 확대 등 산적한 현안들도 그대로 남아 있다. 자칫 경영권 다툼 속에서 기업 경영권에 일본측 의견이 강하게 반영될 것을 염려하는 재계 중진들이 적지 않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를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올려놓고 싶어 했다. 그런데 이번 법원의 판결로 인해 롯데의 경영지분에 대해 일본의 영향력이 커진다면 이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GM 군산공장 철수를 놓고 미국 본사가 보여준 행태를 보며 많은 국민과 근로자들이 분노하고 있지만 별다른 방어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그들의 국익과 기업 이익을 좇을 뿐이다. 롯데가 일본 경영진이 경영하는 그룹이 된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판결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보도를 하고 있는데 대략 소개하면 이런 내용이다.

“한국 경제계는 신동빈 회장의 실형 판결에 당혹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벤처 지원과 스포츠·문화 진흥 등 한국에서는 정부가 각종 명목으로 경제계에 협조를 요청해왔다. 한 대기업 사장 출신은 ‘기업에서는 일일이 대가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거절하면 모가 난다. 돈을 낼 이유는 그것뿐이다’라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정치도 사법도 여론에 민감하다. 정권에 협력해도 좋은 일은 없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이 지금은 한국기업이 정치와의 관계를 피하고 오로지 몸을 웅크리고 있다.”

한국 정계와 재계에 대해 객관적인 듯 하지만 신랄한 비난이 그대로 드러난다.

최근 롯데측은 중국 편향의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포스트 차이나’ 국가에 약 10조원을 들여 대규모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고 러시아 시장 공략에도 나섰는데 이런 노력이 물거품이 될 공산이 커졌다.

이번 판결에 대해 전경련 역시 “롯데는 사드보복 등 국내외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근 5년 간 고용을 30% 이상 늘린 ‘일자리 모범기업’인데 유죄 판결을 받게 돼 몹시 안타깝다”며 “앞으로 롯데의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의견을 낸 바 있다.

재계에선 이번 판결이 롯데 경영권 지배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롯데의 경영권 혼란이 기업의 문제를 넘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광윤사는 한·일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28.1%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광윤사가 움직이면 롯데 경영권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법규와 몸조심 차원에서 집행한 한진해운 청산의 결과가 우리 조선업과 물류업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해 보자. 정부는 롯데의 경영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롯데는 국내에서는 튼실한 기업이지만 지배구조가 일본과 얽혀 있어 이 상태로 내버려두면 자칫 죽 쒀서 남 주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 이후 롯데와 관련된 일처리를 해낼 소지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객관적인 방법 안에서 롯데의 미래를 지원해 주는 일을 매끈하게 처리해 낸다면 반기업적이라는 정부 이미지를 이참에 개선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엽 기자  sylee@techho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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