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홀릭] 같은 사안에 대해 징계를 주고 말고를 결정하게 될 중요한 사법부 판단이 7개월 만에 뒤집어져 금융권과 장기적 기업경영에 심각한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이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 판매와 관련한 징계 처분 취소소송에서 지난 14일 패소하면서 기업 경영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해지고 사법부 판단에 대한 불신도 더 커지는 결과를 얻게 됐다.

파생결합펀드는 주가 및 주가지수를 비롯해 실물자산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을 편입한 펀드들을 말한다. 이 상품은 사전에 정해진 방식에 의해 수익률이 결정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독일, 영국, 미국의 채권 금리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DLF가 대규모로 판매됐다가 국제 금융시장 상황의 급변으로 해당 국가들의 장단기 금리차가 불안해져 원금 손실이 불가피해지지 금융권에 대한 처벌로 이어지는 사태를 낳았다.

14일 하나은행 사건에 대한 행정법원의 판결을 살펴보면 동 재판부는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전 은행장), 장경훈 전 부행장, 박세걸 전 WM사업단장에 대해 하나은행의 일부 내규는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펀드 불완전판매 관련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을 인정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또 준법감시인 제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불완전판매 방지를 위한 내부통제 점검기준 마련의무’도 위반했다고 봤다. 금융권 전체가 이번 판결에 대해 의아해 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상황이다.

지난 해 8월 진행된 동일사안인 우리은행 소송에선 사모펀드 출시 과정에서 상품선정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기준을 실효성 있게 마련하지 않았다는 금감원의 처분사유가 인정되지 않았다. WM그룹의 내부통제기준 준수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은행이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체계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처분사유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

재계나 금융권에선 이 두 가지 사안이 동일한 사건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은행의 경우 실효성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 이번 하나은행의 경우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한 게 실효성이 없다고 인정됐다는 것이다.

사법부 판단은 판례를 인정하지 않는가

문제의 핵심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내부통제 의무와 관련해 법원 내에서도 판단이 엇갈리게 됐다는 점이다. 두 사건의 소송은 서로 다른 재판부에서 진행됐는데, 상반된 판결을 내놓으면서 금융권은 물론이고 법조계에서도 당황스러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점이 하나금융에 더 중요한 것은 함영주 부회장의 경우 차기 하나금융 회장에 내정돼 오는 25일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 의결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큰데 자칫 경영 공백이 생기면 주요 의사 결정이 지연돼 국내 금융그룹의 중장기 성장전략 수립과 실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염려했다.

함영주 부회장은 차기 하나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추천돼 오는 주주총회 의결을 앞두고 있는데 물론 확정 판결이 아니라는 점에서 회장 임명에 결격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불확실성이 계속된다는 것은 기업 경영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금융권 전체에 미칠 영향도 크다

이는 금융권 전체에도 미칠 영향도 결코 작지 않다.

이번 1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금융당국의 금융회사 CEO 제재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고, 금융권 전체에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의 실질적 준수의무가 더해지게 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기업 경영의 애로사항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이 미래 예측에 대한 불확실성을 미처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내부통제체계를 갖춰야 하는지 특정하지 않고, 위험을 예측하지 못했으니 결과적으로 문제가 있고 책임을 지라는 식의 판단이 적용되는 것은 지나치다 못해 경영의 족쇄를 채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구나 열 경찰이 도둑 하나 막기 어렵다는 속담처럼 터지지 않을 사고나 사건을 미리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지금처럼 금융환경이 마이 데이터 사업과 빅데이터와 사이버 환경의 급변으로 예측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시대로 변화하는 와중에 은행 측의 의무만 지나치게 강조한 판결은 문제가 많다는 것이 금융권은 물론 법조계 인사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한편 금융권도 금융당국도 이번 판결의 엇갈림으로 애로사항을 잔뜩 껴안게 생겼다. 금융권은 경영공백과 혼한, 장기 투자나 M&A, 해외 투자와 신성장사업 등에 대한 투자는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금융당국도 1심 재판부의 판단이 완전히 엇갈렸기 때문에 같은 사유로 인해 제재절차에 계류 중인 금융회사 CEO에 대한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그냥 보류하는 것이 아니라 제재기간의 연장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모 생명보험사의 경우도 금융당국이 판단을 미룬 탓으로 징계가 미루어지면서 마이 데이터 사업에 홀로 진입하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를 빚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내부통제에 대한 법적책임이 펀드를 판매한 금융회사의 CEO에게 있다며 금융사 경영진에 중징계 처분을 내렸지만, 금융회사들은 내부통제기준을 이미 마련해 놓은 상태에서 운영상의 미흡을 이유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엇갈린 내부통제기준과 실효성 판단, 사후 결과 책임만 강조

핵심 쟁점인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에 대한 사법부 판단의 혼란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뒷말이 나올 소지가 생겼다.

법조계와 금융권에선 사실상 금융회사의 사후적인 결과 책임을 인정해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확대하는 판단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사법부 불신이 커지고 있다.

함 부회장 재판부는 "형식적으로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 두었더라도 '설정·운영기준'을 위반해 사실상 법정사항이 의도하는 내부통제기능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없는 껍데기만 남게 돼 '실효성'이 없다면, 이는 결국 내부통제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규정된 지배구조법령의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규정은 마련해 두었어도 법적 의도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야말로 자의적인 상황 이해다.

이에 반해 앞서 손 회장 재판부는 "내부통제기준은 형식적, 실질적 측면에서 법령이 규정한 문언적 내용이 일단 다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운영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세부적, 실무적 사항 등이 내부통제기준에서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두고 그 내용이 다소 충실하지 못하다거나 미흡하다고 볼 수는 있을지언정, 금융기관과 관련한 특정 사건이나 행태가 벌어진 이후에 이를 사후적으로 평가해 내부통제기준에 포함될 법정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밝혀 금융권에 미칠 자의적 족쇄를 경계했다.

너무도 당연한 판단 근거가 아닌가.

만약 이번 함 부회장의 1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금융당국의 금융회사 CEO 제재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금융권 전체에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의 실질적 준수 의무가 더해지게 된다. 부담은 더 커지고 금융당국의 조사권은 더욱 강해진다.

뒤집어 보면 금융권의 공격적 경영은 점점 사라지고 수동적인 경영과 과거 사례만 답습하는 보신적인 경영 형태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전체 금융권에 미칠 영향이라는 점에서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행 법령과 판례로 볼 때 '실효성은 목적규정일 뿐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며 "내부통제기준이 '미흡'하거나 '운영상 문제점'이 있더라도 마련 의무 위반 자체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중징계로 가 사안조차가 안 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한편,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고 함 부회장 역시 항소를 통해 2심에서 다투겠다는 입장이어서, 법적 해석과 중징계 여부는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내려질 전망이라 당분간 불확실성은 계속될 전망이다.

금융권 전문가들과 법조계의 금융경제 전문 변호사들은 이에 대해 법구 자체에만 매달린 편협한 결정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이는 모든 위험 예측한 내부통제가 사실상 업계 내에서 절대 불가능하다는 일반적 상식론을 철저히 배재한 것이라 사실상 금융 경영의 흑역사를 만들 소지가 크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과연 대법원이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도 큰 숙제거리로 남았다.

이상엽 기자  thtower1@techholic.co.kr

<저작권자 © 테크홀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