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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팩은 어떻게 IBM 호환 PC를 만들었나
  • 한종진 IT칼럼니스트
  • 승인 2016.08.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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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팩이 선보인 컴팩 포터블(Compaq Portable)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IBM PC와 완벽하게 호환되는 컴퓨터다. 컴팩은 이 제품으로 일약 컴퓨터 산업의 주류로 떠올랐다. 그 뿐 아니라 제품명에서 알 수 있듯 휴대 가능한 형태로 노트북의 원형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런 컴팩 포터블을 거인 IBM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지 않은 채 리버스엔지니어링으로 만들어낸 당시 상황을 공동 창업자이자 오랫동안 컴팩 CEO를 역임한 로드 캐니언(Rod Canion)이 밝혀 눈길을 끈다.

1981년 당시 캐니언은 TI(Texas Instruments)에서 중간 관리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독립적으로 작동하면서 갖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만들 계획을 세웠지만 벤처 자본가 벤 로젠에게 거절을 당했다. 그는 동료였던 짐 해리스, 빌 머토와 레스토랑에서 의논을 하다가 컴팩 탄생의 계기가 될 중요한 아이디어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1982년 1월 8일 아침 이들은 휴대용 컴퓨터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미 구상 자체는 나와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어떻게 차별화하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당시 컴퓨터는 소프트웨어를 달리게 하는 머신이었다. 그러니까 새로운 소프트웨어 300개가 태어나면 컴퓨터도 300개가 탄생하는 식이었다.





이들은 얘기를 나누던 중 그렇다면 이미 나온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킬 컴퓨터가 있을까 생각했다. 기존 소프트웨어를 통째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 당시 소프트웨어 대부분을 움직일 수 있는 머신은 먼저 제품화된 IBM PC 모델 5150이 있었다.

IBM PC는 상당히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개발자도 IBM PC에서 실행되는 프로그램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캐니언은 단순히 IBM PC의 모조품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IBM이 모두 샌드박스화해서 기술적으로 보호를 걸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IBM PC를 복제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IBM PC와 거의 같은 성능을 지니고 같은 소프트웨어를 움직일 수 있지만 압도적으로 저렴한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런 목표를 세운 뒤 3명은 TI를 그만두고 컴팩을 설립했다. 벤처캐피탈 클라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 등에서 자금을 끌어모은 캐니언은 TI의 분노를 사지 않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젊은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를 빼갔다.

IBM 호환 PC를 만들려는 컴팩 입장에서 가장 큰 난점은 바이오스를 리버스엔지니어링하는 것이었다. 당시 IBM PC의 바이오스 소스 코드는 사용자 설명서에 공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IBM의 저작권 침해를 두려워해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았다. 실제로 IBM의 바이오스를 복사한 사실로 고소당해 도산한 기업도 있었다.

이런 IBM의 저작권 장벽을 컴팩은 다른 방식으로 극복했다. 그는 IBM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고 IBM PC의 바이오스 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 이런 행위는 합법적이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적재산권 관련 변호사를 고용하고 이들의 조언에 따라 신중하게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했다. 그가 말하는 방법은 클린룸 설계라는 기술이다. 이는 소프트웨어를 리버스엔지니어링하는 기술자와 소프트웨어를 재설계하는 기술자를 완전히 격리한 상태에서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통해 얻은 기능과 사양을 바탕으로 원래 소스코드와 다른 기술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완성된 코드가 우연히 리버스엔지니어링한 원래 코드와 완전히 동일한 경우가 아니라면 별도 저작물로 인정, 저작권 행사를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는 변호사들이 코드를 구현할 기술자는 IBM PC의 바이오스 코드를 이용하는 건 물론 잠깐 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래머가 코드를 만들고 기능 사양을 결정하는 이 작업은 마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것과도 같았다는 것. 사양을 모두 완성하면 규격에 맞는 코드를 구현했다. 이렇게 엄격한 클린룸 설계를 통해 당시 IBM에 비하면 하찮은 존재였던 컴팩은 9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작업을 완료했다.

1982년 11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완벽한 IBM 호환 PC인 컴팩 포터블이 나오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소비자에게 IBM이 만드는 IBM PC보다 호환성이 더 높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캐니언은 컴팩 포터블이 이런 높은 호환성을 낸 이유로 IBM PC에서 실행되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움직일 수 있는 머신을 만들겠다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무턱대고 달려든 결과라면서 모두 IBM 호환 PC를 목표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호환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컴팩이 한 가지 최초라는 칭호를 얻을 자리가 남아 있었다는 것. 바로 완벽하게 호환되는 첫 컴퓨터라는 것이다.

컴팩 포터블은 제품명처럼 휴대 가능한 컴퓨터라는 장점도 있었다. TI에서 독립하려던 캐니언은 휴대용 컴퓨터 구상에 대한 투자를 거절당했지만 이 구상은 컴팩의 첫 제품인 컴팩 포터블에 구현됐다.

컴팩 포터블의 인기는 엄청났다. 첫 해 5만 3,000대를 팔아 111만 달러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했다. IBM도 휴대용 컴퓨터인 IBM 포터블 PC(IBM Portable Personal Computer)를 내놨지만 컴팩 포터블에는 미치지 못했다. 컴팩 포터블은 결국 IBM 포터블 PC보다 10배에 달하는 판매량을 기록하게 됐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종진 IT칼럼니스트  hanc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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